프로덕트 디자이너였던 나는 학부생 시절, 좀더 현실적이고 실제 구동되는 프로덕트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. 그래서 Figma를 비롯한 여러 툴들로 프로토타이핑을 하기 시작했고, 노코드(No-Code) SaaS 툴을 활용해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. 하지만 그 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.
그러던 어느 날, ChatGPT라는 AI 서비스가 주목받던 시기에 나는 운 좋게도 AI 관련 스타트업에 입사하게 되었고, 점차 AI의 물결이 내 일과 삶 전반에 변화를 가져다주기 시작했다. AI는 직군 간 장벽을 허물었고, 내가 모르는 것을 실시간으로 답변해주면서 ‘개발’이라는 세계로 나아가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.
무엇보다도 내가 개발을 배우려는 가장 큰 이유는, “앞으로 디자인의 언어가 코드가 될 것”이라는 생각 때문이다. 전통적인 시각 언어가 사라지거나 대체된다는 뜻은 아니다. 다만, 코드를 읽고 쓰는 데에 AI가 도움을 주는 지금, 디자이너가 좀더 깊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믿는다.
이미 전 세계 곳곳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은 스스로 개발을 배우고 있다.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, 협업 과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, 그리고 개인의 창작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. AI 시대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 깊은 수준의 퀄리티가 요구될 것이고,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폭넓게 협업하는 ‘T자형’ 인재상이 주목받게 될 것이다.
이제는 메이커(Maker)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직군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함께 작업하고 있으며, 디자이너인 나 또한 그 변화의 흐름을 반기고 있다. 예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인터랙티브 웹사이트나 간단한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한다. AI가 우리 손에 쥐어준 새로운 도구들은 상상 속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게 해주고, 우리는 그 속에서 더 나은 제품과 경험을 고민할 수 있게 된다.
1. 디자인의 언어, 코드가 되다
디자인은 늘 문제 해결을 위한 ‘언어’를 찾는 과정이었다. 과거에는 시각적 요소나 사용자 경험(UX)에 집중했다면, 이제는 여기에 ‘코드’라는 또 하나의 언어가 더해지고 있다. 프로덕트가 실제로 동작하려면,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코드를 통해 구현 과정을 거쳐야 한다. 디자이너가 이 과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다면, 문제 해결의 폭은 훨씬 넓어진다.
2. AI 시대의 협업과 커뮤니케이션
AI 도구들이 점점 발전하면서, 개발에 대한 진입장벽은 낮아지고 있다. 간단한 코드 수정이나 프로토타입 구현 정도는 AI의 도움으로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. 이는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원활하게 만들고, 서로 간의 협업을 촉진한다. 디자이너가 “이 부분은 이렇게 수정할 수 있을까?”라고 물을 때, 구체적인 코드를 제안할 수 있다면 소통 비용은 훨씬 줄어들게 된다.
3. 프로토타이핑의 현실감 극대화
피그마 등 디자인 툴을 활용한 프로토타이핑은 쉽고 빠르다. 그러나 실제 동작하는 형태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. 디자이너가 직접 코드를 다루어보면, 구현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제약이나 데이터 흐름, 성능 이슈 등을 직접 체감할 수 있다. 이를 통해 프로토타입의 현실감이 극대화되고, 최종 결과물에 더 근접한 디자인을 제안할 수 있다.
4. T자형 인재로의 성장
AI 시대에는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(T자형의 ‘수직 축’)과 여러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넓은 이해(T자형의 ‘수평 축’)를 함께 갖춘 인재가 더욱 중요해진다. 디자이너가 개발을 배우는 것은 결국 T자형 인재로 성장하는 길이라 볼 수 있다. 디자인 역량을 기반으로 하되, 개발과의 접점을 넓히고 기술적 이해도를 높인다면,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.
5. 메이커 문화와 융합 능력
Product Maker, Problem Solver 등 여러 이름으로 다양한 직군을 묶어서 프로덕트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통합되어 표현하기도 한다. 디자인과 개발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은, 이처럼 빠르게 변하고 융합되는 시대에 강력한 무기가 된다. 디자이너가 직접 프로토타입을 웹이나 앱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면, 혼자서도 완결된 결과물을 만들어볼 수 있다는 의미다.
6. 미래 패러다임 변화와 대응력
AI가 가져올 미래는 아직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, 확실한 것은 직군 간 경계가 더 모호해질 것이라는 점이다. 디자이너가 개발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있다면, 다양한 시나리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. 새로운 도구나 기술이 등장했을 때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으며, 이를 통해 제품의 경쟁력과 개인의 커리어 경쟁력 모두를 높일 수 있다.
결론
나는 디자이너로 시작했지만, 코드를 배우며 더욱 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. 전문적인 개발자 수준은 아니더라도, AI의 도움을 받아 인터랙티브 웹사이트나 간단한 게임 등을 만들어보면서 무언가를 ‘직접 움직이고 동작하게 하는 ’경험을 해보았다.
앞으로도 AI와 함께할 미래는 더욱 빠르게 변할 것이다. 그 변화 속에서 디자이너가 설계한 아름다운 사용자 경험이 실제 코드로 구현되고,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.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기꺼이 즐기고자 한다.
디자인의 언어가 확장되고, 그 언어에 코드를 추가하는 일이 더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. 디자이너가 개발을 배우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‘더 좋은 경험과 가치를 만드는 것’이라는 점이 될 것이다.